자동차 회사에 폐차 재활용 책임을 지우려던 정부 계획이 무산됐다. 한국GM과 르노삼성, 쌍용차, 수입차 업체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지난 5월 자동차 업체에 자원재활용 관련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 자원순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최종안에서 자동차가 빠졌다.
정부 방침에는 현대차(005380)(217,000�� �� 2,500 -1.14%)와 기아차(000270)(71,000�� �� 1,000 -1.39%)만 찬성했다. 외국 브랜드들의 표면적인 반대 이유는 폐차 재활용을 위한 인프라가 없어 예상 비용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것. 여기에 수입차협회는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재활용 단계에 제조업체가 개입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미 "EU 폐자동차 처리지침(ELV)"을 통해 EU 역내 자동차 제조업체와 판매업체에 폐차의 무료수거 의무를 부과하고, 재활용 의무화 비율을 준수토록 강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차만 팔고 나면 나 몰라라냐"는 지적과 함께 외국 차들도 환경부가 추진중인 "폐자동차 재활용 시범사업"에는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 입법 예고까지 한 법안, 막판에 빠져
환경부는 지난 5월 자동차 및 전기·전자 제품 재활용 수준을 EU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며,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 자원순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폐자동차 재활용에 대한 책임을 자동차 제조업체와 수입업체에 지우고, 재활용목표율을 현재 대당(중량기준) 84% 수준에서 오는 2015년 95%까지 높인다는 것.
지금도 차 제조 및 수입업체에 일반적인 재활용 의무는 있지만, 법 규정이 명확치 않아 책임주체는 없었다. 하지만 법안에는 현대기아차나 한국GM, 르노삼성, BMW코리아와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등에 의무를 줘 이를 지키지 못하면 재활용부과금을 내게 돼 있었다.
류연기 환경부 자원재활용과 과장은 "현대기아차는 정부안에 찬성했는데 GM과 르노삼성, 쌍용차, 수입차 업체들이 반대했다"면서 "2015년 까지는 3년여의 시간이 있으니 10월 중 시범사업 협약을 통해 시설 인프라와 비용 등을 검증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류 과장은 "비용 추산이 안 돼 기업이 섣불리 결정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되는 사안이라 법에는 일단 빼고 시범사업 먼저 하기로 했다"면서도 "(기업들이 재활용목표율을) 낮추라고 하는데, 유럽이 먼저 치고 나가는 상황에서 우리만 낮출순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 외국 브랜드, 반대이유 온도차
실제로 국내 폐차 재활용 인프라는 열악하다. 전기·전자 제품과 달리, 자동차의 재활용 싸이클은 차체 폐차, 압축, 파쇄잔재물 처리, 냉매처리 등 4단계로 이뤄지는데 잔재물 처리나 냉매처리쪽 시설이 국내에는 없는 것.
하지만 반대 업체들이 인프라 쪽만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설비 문제가 전부였다면 시범사업이라도 해 보려는 정부 계획을 꺼릴 이유가 없다.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 등은 10월 중 현대기아차 뿐 아니라 국내 완성차 5사를 모두 넣어 "폐차 재활용 시범사업"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려는 환경부 계획에 난색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086280)(200,500�� �� 7,500 -3.61%)가 자동차 제재조 부품 산업에 뛰어든 만큼, 자칫 현대·기아차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게 아니냐는 논리다.
특히 수입차업체들은 환경부의 "EPR(제조·수입업자가 생산한 폐제품을 재활용하도록 매년 재활용의무율을 부과하고, 미달성시 부과금을 부과하는 제도)" 도입 자체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르노삼성측은 "유럽에서도 법이 시행된 지 3년밖에 안돼 시행결과를 판단하기 어려우니 시간을 갖고 국내 상황에 맞게 조율하자는 것"이라면서 명백한 반대 입장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한국GM측은 "자원재활용을 통해 부가가치가 생기지 않는다면 생산자가 책임지는 게 일반적이나, 돈을 벌 수 있다면 그쪽 운영업체 쪽에서 책임지는 게 맞지 않나"라면서도 "종국에는 완성차로 (책임이) 옮겨올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윤대성 수입자동차협회 전무는 "앞서간다는 유럽에서도 재활용 단계부터 생산자가 개입하고 책임지라는 규정은 없다"면서 "워낙 한국의 재활용 업체가 영세하다보니 메이커에 떠 넘기려는 것 아닌가, 환경부에 유럽차협회와 미국, 일본 등의 공식의견을 받아 (반대)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항구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EU는 2000년 폐자동차처리지침(ELV)을 통해 EU 역내 자동차 제조업체와 판매업체에 폐차의 무료 수거 의무를 부과하고, 재활용 의무화 비율을 준수토록 강제하고 있다"면서 "우리와 다른 점은 위반시 패널티(환경부과금)가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 사회적 책임 논란 불가피.. 시범사업이라도 참여해야
반대 논리 중 하나가 현대차 계열사인 글로비스 때문이라 해도, 폐차 재활용 의무를 회피할 충분한 이유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글로비스가 막 진입한 "자동차 재제조 부품"사업은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이후 사실상 축소됐다. 글로비스가 직접 하지 않고 중소기업으로 부터 주문자상표부착(OEM)을 받아 진행하게 된 것.
국내에서 연간 13~16만대 정도 파는 한국GM이나 르노삼성, 그리고 10만대 정도 판매하는 수입차 업체들이 환경 문제에 있어 빵 봉투 회사보다 못한 책임을 지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항구 팀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문제로 회피하고 싶을 수 있지만 수입차들의 수익률을 보면 국산차를 훨씬 앞서지 않느냐"면서 "외국 자동차 브랜드들도 사회적 책임에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류연기 과장은 "폐차 재활용 시설이나 관련 조합 설립에 있어 현대기아차와 나머지 업체들을 따로 만들 수도 있지 않느냐"면서 "수입차 역시 1대 정도 파는 곳은 빼고, 나머지 회사들은 미국차들은 한국GM, 유럽차들은 르노삼성의 시설을 이용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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